“글을 쓰게 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쓰는 글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가 한 말일까요. 사실 그 ‘누가’ 한 말도 아닙니다. 이 정체불명 인용구의 원문은 바로 “수를 이해하게 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이해하게 된 수란 대체 무엇인가.”입니다. 《마인드스톰》에 인용된 워런 맥컬록의 말을 인상 깊게 읽고 수집해 두었다가 이번에 소개할 《와인버그에게 배우는 차곡차곡 글쓰기》에서 소개하는 방법을 응용해 가공해 본 것입니다.
영감이 번쩍 떠올라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 건 사실 환상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글쓰기 과정은 순간순간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 글감을 모아서 자신이 구상한 주제에 따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발’이 막히는 건 사실 수집, 가공, 구성 연습을 평소에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평생에 걸쳐 40여 권의 저서와 400편 이상의 기고문을 쓴 제럴드 M. 와인버그는 이 책에서 자연석을 모아 돌담을 쌓는 과정에 글쓰기 과정을 비유하면서 글감을 모으고 다듬고 구성하는 과정과 그러한 과정을 따라 하면서 익힐 수 있는 연습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인사이트 블로그의 책 소개 글 중에서도 와인버그의 ‘자연석 기법’을 활용해 쓴 것들이 있습니다. “다시 장인 정신, 《소프트웨어 장인 정신 이야기》”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 대사’, ‘안전 규정’, ‘전설(?)의 자바 두 명 타요 컷’을 엮어 썼고 “소프트웨어 개발의 단짝, 타입과 다형성”은 ‘낙엽 밟기-버그 밟기’, ‘그레이스 호퍼의 버그’ 이야기에서 견고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도전해 온 여정으로 이야기를 발전시킨 후 타입과 다형성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저장된 방대한 글감으로 글을 짜깁기하는 건 이제는 ‘기계 작문’이 더 잘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 본문을 인공 지능 서비스에 올려 몇 가지 프롬프트를 던져 주고 A4 한 장 분량으로 요약하게 시켰다면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는 더 낫지 않았을까요? 2025년에 굳이 글쓰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엇비슷한 분야 안에서 수평 이직(?)하면서 엇비슷한 코드만 짜다가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대는 어쩌면 저물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허드레 코드는 생성형 인공 지능이 더 빠르게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지요.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뇌로 뭔가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사람은 ‘사고’하는 과정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응용 언어학자 김성우가 ‘글쓰기의 과정성(과정으로서의 글쓰기)’을 강조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글쓰기는 현재 남아 있는 상당히 훌륭한 사고 수련법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마찬가지로 오래 전 글감,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글감이 엮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수선하지만 새해를 맞았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좀 더 깊은 사고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다음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후기: 이 글은 어떻게 썼을까요? 역시 자연석 기법을 활용해 5년 전 수집한 ‘워런 맥컬록’을 시작으로 ‘그동안 밝히지 않은 썰(?)’을 거친 후 일종의 수미쌍관(首尾雙關) 구성으로 정체불명 인용구에 답하는 방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고(故) 와인버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