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코딩 교육’이 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 들어오면서 강조하는 목표는 ‘창의력·문제 해결력 향상’입니다. 그런데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데 굳이 코딩 또는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40년 전 한 책에서, 아니 평생에 걸쳐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실천해 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책인 《마인드스톰》의 지은이인 시모어 패퍼트(Seymour Papert)입니다.

시모어 패퍼트는 매우 다채로운 인물입니다. 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발달심리학자인 장 피아제와 함께 연구했으며 MIT에서는 인공 지능 연구소 공동 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패퍼트의 경력을 따라가다 보면 포레스트 검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패퍼트의 생애를 다룬 부록 1을 공개합니다).
초판 서문에서 패퍼트는 어린 시절 톱니바퀴를 가지고 놀았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톱니바퀴를 가지고 놀다 차동 장치에 흥미를 느끼고 차동 장치의 동작을 떠올리며 방정식을 풀었다는 일화는 흥미롭습니다. 패퍼트가 ‘톱니바퀴에 사랑에 빠졌다’고 회상하는 이 경험은 이후 패퍼트의 일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패퍼트는 어떤 사물이 인간의 사고를 자극하고 강력한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패퍼트 외에도 비슷한 주제를 탐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945년 배니바 부시(Vannevar Bush)가 메멕스(MEMEX)에 대한 구상을 담은 글을 발표했고 그 영향을 받은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C. Engelbart)는 1968년 ‘모든 데모의 어머니’를 시연합니다. 이런 주제에 사로잡힌 건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아이디어를 상업적으로 잘 각색하는 법을 알았고 매킨토시를 개발하던 198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를 ‘인간 지성을 위한 자전거’에 비유했습니다(《미래를 만든 Geeks》 75쪽).

새로운 톱니바퀴로서 프로그래밍 언어의 힘에 주목한 패퍼트는 1967년 로고 언어를 완성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다양한 수업 실험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공부에서 떨어져 나갔던 아이들이 로고를 활용한 수업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되찾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러한 사례들이 《마인드스톰》에 소개되는데 때로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로고 실행 화면
로고 거북이 로봇

《마인드스톰》의 주제가 “로고 언어로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성적도 올릴 수 있다”였다면 이 책은 오래전에 잊혔을 겁니다. 《마인드스톰》의 문제의식은 좀 더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에 접근합니다. 패퍼트는 당시(그리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을 배움에서 내몰고 있는 정체된 교육이라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맞는 톱니바퀴(패퍼트는 이를 ‘생각하게 하는 사물’이라 표현합니다)가 필요하며 이러한 수단을 이용해 아이들이 강력한 아이디어를 품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주어진 역사상 매우 독특한 도구인 컴퓨팅 기술이 그 길에 이르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패퍼트 이전 선각자들과 이후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전이기도 합니다.
패퍼트의 비전이 금세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패퍼트 역시 현실 여건에 부딪혔습니다. 컴퓨팅 성능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교육은 매우 느리게 전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패퍼트가 1960~1980년대에 겪었던 문제는 코딩 교육이 본격화되는 한국에서 오늘날 또 다른 양상으로 되풀이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단지 교육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컴퓨팅 세계 선구자들의 비전만큼 컴퓨팅 기술 덕분에 인간의 지성이 성장했을까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나아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100% 장담하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컴퓨터라는 ‘생각하게 하는 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컴퓨팅 기술을 만드는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까 답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현실이 40년 된 이 책을 여전히 읽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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