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형태의 컴퓨터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지금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적 컴퓨터의 첫 개발에 누구의 역할이 컸는지를 두고 말이 많았고, 그중에 튜링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당시 논쟁은 존 폰 노이만인가 아니면 에니악(ENIAC)을 개발했던 존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인가를 놓고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계산 기계를 거쳐 디지털 범용 기계가 되기까지
2차 세계 대전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당시 앨런 튜링은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를 설계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 존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는 진공관을 이용한 에니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존 폰 노이만이 개발에 참여하여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 방식으로 에드박(EDVAC)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튜링은 에드박과 같은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에이스(ACE)를 탄생시켰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같은 메모리에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저장되는, 폰 노이만이 작성한 에드박 보고서 설명에 기반한 구조를 사용하고 이를 ‘폰 노이만 구조’라고 부릅니다.

폰 노이만 구조 (출처: 위키백과)
에드박의 보고서에도 튜링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현대 컴퓨터의 첫 개발에 폰 노이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드박 보고서에는 튜링이 1936년에 쓴 논문을 시작으로 그가 계속해서 강조했던 ‘범용’에 대한 부분이 여러 번 언급되었고, 튜링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그의 영향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또한 에드박 보고서에는 참고 문헌이 거의 없지만, 딱 한 개의 논문만은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은 자신이 1936년 튜링의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본문 8장 ‘최초의 디지털 범용 컴퓨터’ 271쪽)
튜링의 지도 교수이자 람다 대수를 만든 알론조 처치
그의 지도를 받은 저자, 마틴 데이비스가 앨런 튜링을 수면 위로 드러내다
이러한 튜링의 공헌은 알려지지 않은 채 수면 아래 덮여 왔습니다. 저자 마틴 데이비스는 1980년대에 이러한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라 부른다》를 집필하고 튜링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그의 연구 외에도 오늘날 튜링의 공헌이 이토록 알려지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30년이나 숨겨야 했던 비밀 유지 서약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 해독과 같은 임무와 새롭게 발견된 튜링의 1940년대 연구가 아니었을까요?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1936, 앨런 튜링)
© London Mathematical Society 1937
최초로 컴퓨터의 범용성과 튜링 기계를 다룬 앨런 튜링의 논문은 킹스 칼리지 런던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AMT-B-12 | The Turing Digital Archive (cam.ac.uk)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라 부른다》는 다음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