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최근에 나온 책들을 살펴보면서 표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풀어볼까 합니다.

책표지는 주로 두 작업자의 공이 가장 많이 들어갑니다. 바로 편집자와 디자이너입니다.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제 1독자인 ‘편집자’와 책의 콘셉트를 이미지화하는 ‘디자이너’가 책의 꼴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디자인은 단지 그 책 한 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판사의 색, 시리즈 책들과의 연결성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도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저자의 이미지가 명확하거나 내용이 대중적인 책에 비해 전문서의 경우에는 편집자가 디자이너에게 책의 내용을 전달할 때 굉장히 난처할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전문서 출판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사이트의 경우에도 프로그래밍 언어나 IT 기술이나 방법론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표지발주서’를 쓸 때 머리가 아파오곤 하지요. (아무리 편집자가 그 책을 담당한다고 해도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진 못하니까요. 만약 다 이해한다면 인사이트 편집자들은 프로그래밍의 신이 되었을 수도…ㅎㅎ)

그래도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정보와 시각화하기 위한 단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편집자는 열심히 책을 들춰보며 표지발주서를 작성하곤 하지요.  여기에 표지발주서의 내용을 모두 올릴 순 없지만 편집자가 디자이너에게 전달했던 ‘실마리’ 몇 가지를 살펴보고 그 실마리가 디자이너의 뇌를 거쳐 어떤 책표지로 탄생했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컴퓨터과학이 여는 세계』

편집자 버전

– “도대체 컴퓨터과학이 뭔가? 뭘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학계가 내놓은 답 중 하나

– 컴퓨터과학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나이를 밝히고, 그들이 수행한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연구들이 뭘 만들었는지.

쿠르드 괴델(25세):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다.

앨런 튜링(24세):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를 재증명하는 가운데, 증명을 위한 ‘소품’으로 컴퓨터 디자인(튜링 기계, Turing machine)을 슬쩍 펼쳐 보이다.

클로드 섀넌(21세): 스위치와 부울논리(and, or, not으로 만들어지는 생각의 세계)를 결합시키다. 스위치만으로 컴퓨터의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

– 아직은 어린 수준인 컴퓨터과학 : 컴퓨터과학은 건축, 물리 등 여타 과학 분야에 비해 성립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가 닿아야 할, 성취해야 할 목표도 많고.

그럼 이러한 실마리를 얻은 디자이너가 제시한 책표지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디자이너 버전

– 컴퓨터과학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인물과 상징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중앙에 위치한 인간은 이러한 유물을 등에 지고 가슴(?)을 연 채 어딘가로 걷고 있군요.

『25개 애플리케이션으로 배우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편집자 버전

– 흔히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설계)를 설명할 때, 건축의 메타포를 가져오곤 합니다. 그래서 원서의 표지는 설계도가 어떻게 건축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 요즘은 건축의 메타포로는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온전히) 설명하기 힘들다고 얘기합니다. 대신 가드닝(정원 가꾸기)으로 설명하죠.

– 이리저리 나무도 옮겨 심을 수 있고(설계 변경), 죽는 게(기능) 있으면 새롭게 피어오르는 것(기능)도 있으며, 잡초도 잘 뽑아줘야 하고(디버깅) 등등 꾸준히 관리하고 개선해야 좋은 정원(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식입니다.

가드닝이라는 메타포를 제시한 편집자. 이 아이디어를 디자이너는 아래와 같은 표지로 표현해냈습니다.

디자이너 버전

– 표지를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정성들여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손보는 개발자들의 모습을 대입해볼 수 있다면 성공!

이렇게 최근에 나온 책표지의 뒷이야기를 살짝 들여다 보았습니다. 책의 핵심을 어떻게 물성화할 것이냐는 앞으로도 편집자나 디자이너에게 항상 고민해야할 숙제 같습니다. 특히 글로만 존재하던 저자의 생각을 ‘책’이라는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평면에서 보는 모습뿐만 아니라 입체로 보일 때의 모습도 고민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판형을 정하고 종이의 종류를 선택하고 면지의 색을 고르는 것도 책이라는 물건의 전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책표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표지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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