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인사이트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인사이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홍원규 편집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1.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인사이트 출판사에서 일하시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삶에 어떤 변화가 있다”라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고, 하루하루를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책임과 부담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게 변화라면 변화겠죠? 그리고 IT 출판이라는 ‘익숙함’ 속에서 어떤 ‘새로움’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요? ^^
편집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중압감이 어떨지 저 같은 날라리 편집자로서는 상상이 안 갑니다만 왠지 머릿속에 항상 고민거리를 넣고 다니실 것 같군요.
2. 기억에 남는 저자나 역자가 있다면?
편집자 초기 때였어요. ASP.NET 관련 도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번역 일정이 훌쩍 넘었는데도, 마지막 2개 장이 마무리가 계속 마무리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메일과 전화로 계속 연락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퇴근하고 저녁에 그 역자 집으로 찾아갔죠. 도착해서 확인을 해보니 그분은 아직 퇴근 전이었고, 전 아파트 입구 앞에서 한두 시간 정도 기다린 것 같아요. 드디어 그분이 오셨고, 기다리던 절 보더니 씨익 웃더군요. 그리고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왜 이제야 왔어?’ 하는 눈빛으로 절 반기더라고요. (사실 좀 당황했죠. )
그러고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PC를 켜고 18.hwp, 19장.hwp라는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하고 저한테 메일을 보내는 모습을 직접 시연했습니다. 원고 마감도 안 되고 2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도 억울하고, 너무 당당한 모습에 짜증도 났지만, 그 모습을 보니 그래도 이제 마무리가 되었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좀 풀어졌고, 그분에게 번역하느라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날에 터졌죠. 저한테 보낸 메일의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두 파일의 이름은 다른데, 내용은 동일한 하나의 파일이었어요. 그것도 불과 서너 페이지 밖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미완성 파일……. 순간, 어제 절 보며 씨익 웃던 능청스러운 얼굴이 스치더군요. 제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준비해두었던 두 개의 파일!
그날 분명 전 하수였습니다만 나중에 지나서 보니 이분께 고맙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분이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곤 하죠. 저 같으면 멘탈이 탈탈 털렸을 것 같은데 홍편집장님 초긍정 마인드로 극뽁~하셨군요. 오지 않는 원고를 한없이 기다리는 편집자의 마음을 누가 알리오~ ^ ^ (여기서 잠깐, 예비 저자분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마감이 지연될 것 같을 때는 차라리 미리 연락을 주시면서 편집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더욱 좋습니다. 편집자는 여러분을 해치지 않아요~)
3. 출판사마다, 편집장마다 강점과 개성이 다 다를 거로 생각하는데요, 홍 편집장님은 자신이 어떤 편집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제가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자격 요건을 갖추거나 그에 따른 업무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저 스스로가 편집장의 역할과 책임을 하기 위해서 되내이는 일종의 자기 암시 같은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누군가 “편집장님~~” 하고 부를 때마다 뜨끔뜨끔합니다.
경청하는 자세는 기본이죠! ㅎㅎ
다른 편집장님들보다 상대적으로 경험이나 경력도 짧고 배워야 할 게 많아서 내가 어떤 편집장이라고 단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사이트에서 편집장으로서의 역할을 주셨으니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제 나름의 방식을 찾고 있는데요. 제일 먼저 함께 일하고 있는 편집자들의 수준과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그 수준과 역량에 맞춰 단기적으로 방향을 잡고 과제를 부여하면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합니다.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료 관계로서 일이나 사람 뒤에 숨지 말고 더 나은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아직 제가 어떤 편집장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편집장님의 고민이 진하게 느껴지는 답변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동료와의 관계에 정성을 쏟는 홍편집장님의 진심은 항상 느껴지더라고요.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는냐가 ‘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는 관건인 것 같네요. 이쯤에서 사람 중심의 작업 환경에 대해 담고 있는 『피플웨어』를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소프트웨어보다 먼저 피플웨어! – 사람 낳고 소프트웨어 낳지, 소프트웨어 낳고 사람 낳은 게 아니니까요!)
4.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나만의 팁이 있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살짝 알려주세요. ^ ^ (아니면 인간관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가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진심입니다. 인간관계를 만드는 좋은 이론과 방법을 공부하고 적용했다고 하더라도 진심을 다해 대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더 빨리 압니다. 그리고 본전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잘 해줬으니 저 사람도 변할 때가 됐는데.. 하고 기브 앤 테이크의 관점으로 사람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로또 1등에 당첨됐다거나 갑작스럽게 가까운 가족이 사고를 당했다거나 하는 큰 경험은 예외입니다만), 따라서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 저 사람은 이렇게 바뀔 거야 라고 기대하면 속만 상하고요.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 예전 한 대선 캠프에서 얘기했던 구호를 믿습니다.
“시작은 공평해야 한다.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면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에고, ‘기브 앤 테이크’ 부분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뜨끔했습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집에 와서 본전 생각하는 저란 인간… ^ ^; 참 어려운 게 인간 관계지만 잘 풀리지 않을 수록 진심으로 대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시작은 공평해야 한다’라는 구호는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왜이리 아득히 멀게 느껴질까요. (시무룩-)
5. 앞으로 만들고 싶은 책은?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는?
앞서 언급해주셨듯이 몇 년 동안 다른 동네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다시 이 동네로 돌아와 보니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 사이에서 둘 다를 충족시킬 방법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 답을 못 찾았습니다. 그 답을 찾고 그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죠.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 출판인, 아니 무언가를 만들어 팔려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음에 품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항상 좋은 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인사이트가 지향하는 가치이자 꾸준히 인사이트의 색을 더해나가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인사이트가 ‘믿고 볼 수 있는’ 책을 꾸준히 만들어내기를 바라게 됩니다.
잠시 편집장님의 책상을 살펴볼까요?
송우일 편집자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깔끔한 모습입니다.
꼼꼼한 기록이 돋보이는 편집장님의 수첩. 컴퓨터가 있어도 수첩에 필기를 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하시네요.
평범한 문구들 사이에서 동전으로 가득한 ‘앱솔루트’ 캔이 눈에 띕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 액자도 살짝 엿볼 수 있었고요.
그 동안의 경력을 말해주는 듯한 명합첩.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담당하고 계신 책입니다. 살짝 공개! ^ ^ 오라일리 시리즈로군요. 곧(?) 출간될『Effective Modern C++』 기대해 주세요.
인사이트라는 출판사와 홍원규라는 편집장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홍편집장님이 믿는 원칙처럼 공정한 과정 뒤에 좋은 결과가 뒤따르기를 소심하게 바라면서 인터뷰를 마칩니다.
『Effective Modern C++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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