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하면 3D 그래픽 작업을 하는 3Ds Max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서점(컴퓨터 카테고리)에 검색을 해봐도 온통 3Ds 맥스 책만 수두룩하게 보이지요.

이 맥스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이 맥스 외에도 또다른 맥스가 있답니다. 바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저작 도구)입니다. 주로 실시간 MIDI 제어, MIDI 기반의 알고리즘 작곡, Synthesizer 프로그래밍, 실시간 영상 재생, 처리 및 제어, Audio-Visual, Sensor를 이용한 퍼포먼스 등 폭넓은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이용된다고 합니다(설명 인용 : 앨리스온). 프로세싱에 비해 직관적인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고 합니다.

대체로 Max/MSP/Jitter로 부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기본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Max, 음악 관련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MSP, 그래픽 관련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Jitter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각각 독립적으로도 사용을 하는 모양이라 이름에 통일성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MAX 6이 나오면서는 세 가지를 통합한 느낌이 확실해졌다고 하네요.

MAX 5 화면과  MAX 6 화면에 쓰인 명칭 비교

그동안 확실한 입문서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하거나 처음 접하는 분들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저희도 왜 그동안 입문서가 없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몇 분에게 여쭤보니 아무래도 맥스 자체가 설명하기 시작하면 내용이 한없이 방대해질 수도 있고, 입문하기는 쉽지만 어디까지 다루어야 할지를 정하기도 매우 애매하다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특히나 Max, MSP, Jitter를 따로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더욱 책은 두꺼워질테고요.

이런 까다로운 일에 뛰어드신 건 바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과 함께 강의를 해오신 조이수 님입니다.  책 맨 뒤에 실린 후기를 읽어보면 저자가 직접 좌충우돌 힘들었던 입문 과정을 떠올리며 집필까지 하게 된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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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왕의 메시지: 마무리

LED의 추억

누구나 그렇겠지만 맥스 6을 공부하다 보면 센서를 사용한 실시간 제어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 집니다. 또는 어쩌면 미리 그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맥스 6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둘 다 괜찮은 생각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순간 누구나 큰 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페이스 보드에 대한 부분입니다. 맥스 6은 외부 장비와 입출력할 수 있는 오브젝트들을 너무 쉽게 제공합니다. 그에 비해 정작 그것을 실행하려고 보면 센서를 어디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초심자가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거기에 대한 정보가 대략은 나와 있어 방향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제가 피지컬 컴퓨팅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에는 국내에 지식이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던 때라 저는 I-Cube X를 멋모르고 해외에다 주문하게 됩니다. 왜 ‘멋모르고’란 단어를 썼냐하면 당시에 배송비와 관세, 부가세까지 합쳐서 거의 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자면 정보가 없었다는 말보다 무식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습니다만 덕분에 대단히 비싼 레슨비를 지불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 일에 대한 후회는 조금 더 저렴하고, 범용적인 인터페이스 보드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그해 말에 국내 comfile사의 PICBASIC을 주문하게 됩니다. PICBASIC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지만 마이크로컨트롤러에 대한 지식도 없고 주변에 누구 하나 배울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부딪혀 보자는 생각에 가장 고가의 PBM-R5와 스터디 보드를 주문했습니다. 두 가지를 합쳐서 약 20만 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00만원이 넘는 I-Cube X를 구매했던 ‘무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하나도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 정도는 공짜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며칠 뒤 PBM-R5와 스터디 보드 그리고 PICBASIC 설명서 한 권이 배달되었습니다. 음……. 꿈에 그리던 센서는커녕 스터디 보드의 LED 하나 켤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2주 동안 보았던 설명서는 암호 책이었고 저는 100만원을 절약하려다 또 다시 20만원을 날린 것이라는 생각에 PBM-R5가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무식하니 몸이 힘들다’가 아니라 ‘무식하니 돈만 날렸다’였습니다. 당시에는 LED에 저항을 왜 연결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한 상태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겁니다.

고민에 빠진 후 열흘 정도 지났을까요. 문득 PICBASIC의 예약어 중 BYTE가 떠올랐습니다. 디지털은 0과 1이니 이 명령어로 LED를 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학 시간에 배웠던 2진수를 떠올리며 스터디 보드의 버튼에 각각 1, 2, 4, 8, 16, 32, 64, 128을 할당해서 버튼을 누를 때마다 8개의 LED가 켜지는 코드를 짰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빗대어 말하자면 ‘디지털 인’과 ‘디지털 아웃’이 되겠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것은 저에게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희열로, 급기야 그 다음 주 크리스마스이브 회식 자리에 노트북과 RBM-R5를 들고 가는 해프닝을 벌이게 됩니다. 당시 강남 K문고 뒤에 있었던 태국 음식점에서 준비에 10분 걸리고 실행에 5초 걸린, 버튼을 눌러 LED를 켜는 초대형(?)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그때 기쁨을 함께 했던 친구가 저의 서울대학교 조소과 동기이며 인사이트 출판사에서 출간된 『손에 잡히는 프로세싱』의 역자 황주선 선생이었습니다. 비록 그날은 똠양꿍의 독특한 향과 함께 PBM-R5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만 황선생은 그 일을 계기로 마이크로컨트롤러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고, 저는 여러 가지 마이크로컨트롤러를거쳐 아두이노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회자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켜고 끄는 LED를 켠 것이 절대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그것은 혁명이었고, 신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황 선생은 작년에 프로세싱을 주제로 한 번역서를 출간했고, 저는 현재 이 책의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과 LED 하나에서 시작했던 이 책이 우리나라의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도 포토샵이나 프리미어처럼 쉽게 맥스 6을 사용할 수 있는 장대한 날의 서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미약한 시작을 LED를 켠 것이라고 후기에 적고 있듯이 여러분 중 누군가가 자신의 미약한 시작을 이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초입에 원고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작업실 창 밖을 보니 비를 뿌리며 봄이 올 채비를 하고 있군요. 이제 원고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정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책표지를 보면 어떤 게 연상되시나요? 혹시 촘촘한 거미줄이 짠~하고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이진 않는지!맥스 패치 코드를 거미줄에 비유한 책 내용과 연결되는 책표지랍니다.

맥스 입문서에 목말라 하던 독자들이 재밌는 비유와 쉬운 설명으로 구성된 『손에 잡히는 MAX 6』으로 즐겁게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고, 심도 있는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정오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