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인간, 조직, 권력 

그리고

어느 SW 엔지니어의 변(辯)

다년간 SI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여온 이종국 님이 틈틈이 써온 그간의 경험을 하나의 원고로 묶어 <<인간, 조직, 권력 그리고 어느 SW 엔지니어의 변>>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습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개발 담론’이라는 우아하고 삐까뻔쩍한 설레발은 이 책에 없습니다. 잘나가는 외국회사 경험담? 당근 없습니다. 최첨단 개발방법론에 핏대 세우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현장에서 살아남은 어느 토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꿈틀대는 날것의 고언입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생한 현장을 보여줍니다.
‘왜,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그의 식변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그 문제와 모순의 핵을 꿰뚫습니다. 인간, 조직, 권력, 정치의 창으로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아울러 이러한 현실에서 탁월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만의 독특한 입담으로 일갈합니다.
그럼 잠깐, 툭툭 던지듯 내뱉는 저자의 쾌변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WBS는 고객이 개발자를 통제하려는 수단이다. 작성하지마라. 일정을 작성하더라도 마일스톤만 정하되 한 달 이하로 작업을 쪼개지 마라……프로젝트 계획서는 고객이 경영층에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진척 상황 관리는 반드시 숫자로 보고하도록 하라. 그래야 경영진의 간섭을 막을 수 있다…… 품질관리는 권력자가 전 조직을 통제하려는 수단이다……품질관리팀, PMO, 감리사 등 기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감독자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이들의 기본 가정은 프로젝트팀은 믿을 수 없으며 언제든지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강력한 생존 본능을 지녀라>라고 합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SW 엔지니어로 살아남으려면 생존 본능이 강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험한 상황을 돌파하는데 머리로 이리저리 궁리하는 순간은 이미 늦는다고 합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움직여야 한답니다.

<탁월한 능력을 배양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냥 주어진 일 잘 마무리하는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아무 일 없다는 듯 완수하는 그런 능력입니다. 어떻게 프로젝트를 완수했냐고 물으면 씩 웃으며 “그냥”이라고 아주 쿨할줄도 알아야 한답니다. 주변에 탁월하다고, 믿음직하다고, 하는 엔지니어는 모두 이런 생존본능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런 생존 본능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엔지니어들이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상세히 알려줍니다. 정글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세계에 뛰어든 신입 엔지니어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회사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이런 엔지니어를 찾아낼 수 있는 심미안을 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 소프트웨어 현장의 문제점을 모두 다루고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제안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같은 시대, 동종의 현장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절실했던 얘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길 바라는 것 뿐입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나 해결책으로 제안한 내용들은 이 현장에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인간, 조직, 권력이라는 창으로 바라본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고 온갖 사상자와 패잔병들이 나뒹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마도 저자의 경험을 잘 새겨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산다는 것은 항상 이렇게 자신과 타자가 뒤엉켜 진흙탕 속에 뒹구는 과정의 산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마도 전략과 전술 그리고 처세와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열악한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서 탁월한 SW 엔지니어로 살기남기 위한 몸부림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무릇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지 않을까 바라봅니다.

저자의 소박한 바람을 끝으로 이 책의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부디 이 책이 한국의 어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외로운 독백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박관념과 불안, 초조에 시달리며 하루를 버티는 많은 개발자들에게도 그저 한 인간의 그럴듯한 경험담으로 치부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