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경험 스케치>가 한창 편집 중이었던 지난해 9월쯤이었을 겝니다. 뜬금없이 캐나다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습죠. 친군가 했더니 묘령의 여성 목소리더군요. 영어에 최적화된 혀가 튕겨내는 어눌한 한국어로,,,
여보세요, 두루 씬가요?
예, 맞습니다만,,,,실례지만 무슨 일로…
아, 빌 벅스턴 씨 아시나요?
음, 개인적으로야 뭐..,,,저희 책 저잔데요…
그분이 당신하고 할 말이 있다네요.. 이메일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 예…불라불라불라..
이렇게 시작된 빌과의 만남은 친절하기 그지없는 메일이 뜨문뜨문 몇 차례 오고간 끝에 급기야 지난 8월 자신의 스케줄이 담긴 장문의 메일을 받게 되었습죠. 뽀인뜨는 요겁니다.
인사이트가 번역서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저자로부터 직접 이런 식의 친절한 제안을 받은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죠. 당근 뭘 어케 해야 할지 몰라 한마디로 아수라의 한 가운데서 우왕좌왕, 좌충우돌….결국 급히 황리건 님께 SOS를 요청했드랬습니다.
리건 님, 이런 식의 제안이 왔는데,,, 혹 컨퍼런스나 이벤트 계획 없으세요?
아, 그래요, 마침 KAIST에 노먼이 와 있는데,,, 같이 뭔가를 꾸밀 수 있겠는데요….제가 함 해보죠…
그래서 우리의 수퍼파워(?) 리건 님,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 이번 UX symposium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KAIST 교수님들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었지요. 도널드 노먼, 빌 벅스턴 외 LGE의 이건표 센터장님, 다음의 조제희 팀장님, 넥슨의 강규영 님 등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볼 거리,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고 하네요. 이 덕분에 저희도 판매부스와 저자 사인회를 마련하여 책 홍보에 쏠쏠한 재미를 보았구요.

빌과의 첫 만남은 약간 싱거운 바람 같았습니다. <Sketching user experience>에서 보여줬던 강렬함 때문에 마치 그의 글이 ‘의식의 서사’ 같았던, 그래서 뭔가 범접키 힘든 아우라를 기대했던 저로서는 ‘무의식의 논리’에 빠진 것처럼 흐트러진 아귀를 맞추느라 잠시 멈칫해야 했습니다…..왜냐구요… 동네 어귀에서 흔히 마주치는 수퍼마켓 아저씨 같았거든요.

시원하게 벗겨져 눈이 부신 두부하며,
정돈하지 않아 팔랑대는 머리칼하며,
무심하게 싱글쌩글 대는 눈빛하며,
족히 10년은 넘게 입었을 듬성듬성 색이 바랜 쎄무 자켓하며,
언제 다리미질한 지 모를 꼬질꼬질한 셔츠,
무릎 터져나온 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누런 캐줠 구두…
더불어, 위 분위기와는 아주 쌩뚱맞게 안 어울리는 컬러풀한 돋보기 안경테까지…
간단한 인사와 함께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더군요..(아마 제가 영어가 안 돼 엉뚱한 말을 내뱉었는지도 아니면 발음이 안 돼 잘못 이해했을 수도..그래서 그랬나?) 뭐 어쨌든, 이런 첫 인상은 점심식사 후 시작된 강연 세션에서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와 유머러스한 액션을 확인한 후 여지 없이 깨지긴 했지만,,, 아무튼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저자 사인회에 앞서 빌이 저희 부스에 잠시 들렀드랬습니다. 빌은 중요한 뭔가를 발견한 듯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저희 책이 원서보다 훨씬 잘 나왔다고 GREAT!를 연발하더라구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담당 편집자인 나로서는 약간 업된 기분으로 우쭐한 제스처를 해댔습니다. 물론 바로 박살나고 말았습죠. 턱하니 옆에 서 계셨던 사장님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이 책의 판매지수가 떠올랐거든요.ㅠ
처음 만남의 순간부터 인사이트 스탭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까지 줄곧 잃지 않았던 편안한 미소와 협업으로 단련된 듯한 아니 되었을지 모를, 어쩌면 부담스레 느낄 만한, 친절함은 그가 가진 지식 혹은 능력만큼이나 그만이 내뿜는 하나의 인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소 애써 찾고 싶었던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서 느끼는 가벼운 설레임이 아직도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군요.
Bill~~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