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직업병은 ‘편집증’입니다. 거리의 간판이나 식당 메뉴판에서 오탈자 찾기, 대화 안에서 비문 느끼기, 짜장면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장면이 맞다고 의식하기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요. 편집증을 발휘한 일화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참고로 짜장면은 얼마 전에 표준어로 등재되었습니다. ^^

얼마 전 우거지 갈비탕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테이블에 화장지가 없길래 아주머니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 화장지 좀 주시겠어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께서 농담반 타박반 섞인 목소리로

‘이건 휴지야 휴지~ 화장지는 화장실에서 쓰는 거지~’

라고 하시며 휴지(?)를 건네 주시더군요.

음… 이 아주머니는 ‘화장지’를 독특하게 정의하시는군 하면서도

다들 편집자인지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편집증을 드러냅니다.

화장지의 ‘화’가 혹 化가 아니라 다른 한자일 가능성은 없는지(예컨대 花라든지 하는)
뒷간에 쓰는 단어 화장(실)과 얼굴 화장이 다른 단어일 가능성은 없는지
더 나아가 냅킨과 티슈의 차이는? 각각을 번역하면 휴지가 맞나 화장지가 맞나 등등

옛날 같으면 서로 부정확한 정보를 주고 받다가 사무실로 돌아와서 찾아봤을텐데,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니까 그 자리에서 수사를 시작하지요. ㅎㅎ일단, 휴지/화장지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에 들어가니……

화장지(化粧紙)

1. 화장할 때 쓰는 부드러운 종이

2. 휴지(休紙)를 달리 이르는 말

휴지(休紙)

1. 쓸모없는 종이

2. 밑을 닦거나 코를 푸는 데 허드레로 쓰는 얇은 종이

찾아보니 비슷한 의미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구분을 하자면 크리넥스 류는 화장지, 두루마리 류는 휴지로 나눌 수 있을까요? 확실한 건 화장지의 의미가 ‘뒷간에서 쓰는 종이’는 아니라는 거. 국립국어원의 ‘권위’를 빌려 확인한 사항이죠.

그래서 이 사실을 아주머니께 다시 말씀드렸냐구요?

결코! 절대! 네버에버!

저는 소심한지라, 감히 반찬 공급원의 심사를 상하게 하여 반찬 공급에 영향을 끼칠만한 그 어떤 일도 담대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다음에 그 식당에 가게 되면 이렇게 말씀드리겠다고 머릿속에 기억을 해두기까지 합니다.

‘아주머니~ 휴지 좀 주시겠어요?’

인사이트의 독자들도 각자 직업병이라 여길만한 습관이 있을텐데요. 어디선가 봤던 개발자의 직업병 중 인상깊은 항목은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신경쓰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