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여러분과 신문 기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교보 메인을 장식하게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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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의 제목은 Revolution in the Valley입니다. 기록을 뒤져보니, 2007년 7월 경 원서를 입수해 검토를 시작했더군요. 어느 책이라고 사연이 없겠습니까만, 이 책에도 기억할 만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 발간 유보 – 2007년 8월
샘플 책을 받아들고 스티브 워즈니악의 추천사, 저자 후기 등등 몇 개 장을 샘플로 번역(요청)해 검토를 시작했으나 맥 개발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의 나열 정도로 판단했던 듯합니다.
그렇다고 제목에서 뭔가 ‘필’이 오지도 않고 – Valley에서 일어난 혁명 – 맥 사용자가 아닌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부제가 확~ 다가오는 것도 아니어서 – The Insanely Great Story of How The Mac Was Made, 매킨토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국내의 맥 사용자는 극히 소수이고, 2007년 당시엔 요즘 같이 화제의 중심에 있진 않았고, 인사이트가 2007년 9월 코코아 프로그래밍(1/E)을 발간하자, 이런 책도 국내에 나오는구나 하고 신기해 하신 분이 계실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몇 안되는 맥 사용자 중 다수는 그래픽, 편집 등등의 영역에 계신 분들이어서 매킨토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프로그래머 층에서 맥북 사용자가 조금씩 늘고 있는 건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 매킨토시 사용자 층을 잘 아시는 분께 여쭤보니
대략 국내 맥 사용자 수는 15만 명, 그 중에서 진짜 맥 사용자 수는 5만 이하. 아직 맥을 하나의 컴퓨터라기보다는 작업용 컴퓨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층에서 ‘Revolution in the Valley’ 같은 책을 사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라는 답을 들었구요.
책 내용이 워낙 좋아 분명 다른 층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질 만하고 적절한 홍보만 곁들여진다면 저번에 민음사에서 출간했던 ‘iCon‘처럼 잘 팔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라는 의견이 덧붙어 있긴 했지만, 저희가 민음사 같이 ‘적절한 홍보’를 해낼 조건은 아니지요. ㅎㅎ
대상독자가 좁을 것 같다는 의견도 중요했지만, 당시로선 소위 콘셉트를 잡지 못했던 듯합니다. 즉, 독자는 이 책에서 어떤 가치를 얻게 될지(인사이트는 어떻게 제시할지)까지 정리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면서 책 검토는 일단락 되었습니다. 발간 않기로 한 거였죠.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라 원서는 출판사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 편집자의 손에서 저 편집자의 손으로….
2. 제목 논란 – 매킨토시를 전면에 내세울 것인가?
『미래를 만든 Geeks(긱)』은 매킨토시 탄생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1979년 제프 라스킨이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게 쫓겨날 때까지.
(스티브 잡스는 펩시콜라 CEO이던 존 스컬리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설득해 데리고 왔다고 하죠. “남은 일생 동안 아이들에게 설탕물이나 팔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은가요?”)
때문에, 매킨토시를 전면에 내세운 수많은 제목 시안들이 검토 회의에 올라왔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 열정으로 혼을 불어넣은 매킨토시 탄생 비화
  • 미친 열정으로 탄생한 매킨토시
  • 매킨토시, 위대한 탄생
한편으로 다른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매킨토시’ 자체보다는 ‘그걸 만든 사람‘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Geeks이 나온 이유입니다. 한글로 ‘긱 혹은 긱스’라고 표기하면 너무너무 어색할 듯해 할 수 없이 영문으로.
한편 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 1984년 매킨토시의 탄생은 개인용 컴퓨터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데, 원제가 더 나았다.(맥 관련 잡지 전 편집장님 등)
  • 애플 바깥의 사람들이 취재해 만든 여타 책들과 달리 (어쩌면) Revolution in the Valley는 매킨토시의 정사(正史)라 할 수 있는데, 매킨토시를 전면에 세웠어야 하는 거 아닐까.
  • 원서 자료들은 애플의 창고를 뒤져 나온 귀중한 자료들인데, 그걸 온전히 살렸을 때만 의미가 깊다. (트위터에 올라온 댓글)
등등 말입니다. (잘 뒤지면 “인사이트 책이라 역시 제목부터 맘에 안듭니다.”는 의견까지 있습니다. ㅜㅠ)
주로 매킨토시를 개인용 컴퓨터로 오래 사용하고 애정이 깊은 분들께서 제기하시는 듯합니다.
3. 제목 변경 – 세상을 뒤흔든 Geeks
혼선을 거듭하며 수차례 제목/부제를 논의하던 중, O’Reilly는 왜 Revolution이라고 표현했을까 하는데 시선이 갔습니다. 컴퓨터의 역사에 밝은 분들이라면 바로 아하! 하겠지만, 저희가 제목 논의를 할 때만해도 그 의미가 바로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혁명적인 변화’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논의 끝에 ‘세상을 뒤흔든’이란 아이디어가 나왔고, 드디어 제목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이란 수식이 역사서 등엔 몇몇 쓰였기에 완전히 독창적이라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써도 무리 없겠다는 판단을 했죠.)
제목이 결정되었으니, 표지를 발주하고, 마감을 서두르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프로그래머들의 비밀이란 책을 정보문화사에서 발간한 겁니다. 순간 아득해졌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Geeks이란 제목을 뽑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고생했는데, 그걸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니…. 그리고 더 나은 제목이 과연 나올까 하는 의문.
시간은 지나고 아이디어는 없고, 마감은 다가오고, 새로 회의를 해도 맥이 빠지기만 하던 어느날 하릴없이 편집 최종본을 넘기는 데, 문득 앨런 케이(Alan Kay)의 글이 새삼 크게 다가 왔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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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 끝에 책이 나왔습니다. 꽤 방황하기도 하고 고전하기도 했고.
다행히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한 내용은 편집(제목, 디자인 등)에서 나쁘지 않게 정리된 듯합니다.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겨레 등에서 톱 혹은 면톱으로 기사를 실었고, 한국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전자신문에서는 꽤 비중있는 기사로 처리했습니다. 인사이트로서는 처음으로 교보문고 메인 화면을 장식할 예정이구요.
책 내용은 여러 기자님들께서 정리해 주신 기사들이 검색에 올라오니 그걸 참조하시면 될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경험은 부족했으나 위대한 일을 하려고 했던 이 젊은이들이 오늘날 일상에서 쓰이는 핵심 기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회상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들이 쓴 글과 그림을 보며, 혁신의 규칙이 돈이 아니라 내면의 보상에 의해 이끌어지던 매우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맥이 탄생한 지 올해로 27년째다. 시장은 고도화됐고 개발자들의 기술도 성장했지만 그 시절만큼의 낭만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IT 세상이 노쇠한 것일까? 특히나 각박하다는 한국에서는 1960~70년대 비저너리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새길 여력도, 같은 꿈을 꿀 여유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IT 세계에서 흥미진진한 일들은 여전히 몽상을 좇는 다소 무모한 낭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쩌면 아이폰 개발자들도 자신들의 선배 개발자들과 비슷한 꿈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개발자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 송우일 님의 옮긴이 글에서

정오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