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면 화려한 문구로 치장한 책들이 눈에 띈다.

대개 책에 띠지를 둘렀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보이는데, 양장본이다. 한 번 훑어보려고 책을 펼치니 양장본의 표지와 함께 자꾸 띠지가 벗겨지려 한다.

어차피 읽기 시작하면 버려버릴 띠지를 대체 왜 자꾸 둘러놓는 건가. 두껍기까지 해 가는 길에 버리게 생겼다.

제가 띠지를 보고 받는 느낌은 이렇습니다. 대개 ‘거추장스럽다’에 그칩니다.

자, 난데없이 띠지 얘기를 왜 꺼내느냐…

인사이트에서 새로운 책을 내며 띠지를 두를 일이 생겼는데, 과연 쓸모 있느냐라는 질문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개인적으로 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이 가장 큰 이유고, 광고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건 알겠는데, 제게 뭐 그리 큰 광고 효과는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띠지를 보면 숫자를 내세우는 문구가 많습니다.

10만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3주 만에 52쇄라는 경이적인 기록!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뜻이고, 많은 사람이 선택한 책이니 믿고 사라는 얘기일 테지요. 제 입장에서는 ‘많이 팔렸다고 내게도 좋은 책이란 법은 없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몇 만 명이 봤든 몇 만 부가 팔렸든, 그런 숫자를 내세우는 홍보문구라면 오히려 종이 낭비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구글에서 ‘띠지’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띠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집니다.

<라이브러리 & 리브로>라는 잡지는 ‘띠지 추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띠지를 하지 않으면 출판사 입장에서야 제작비도 절감하고, 편잡자 입장에서는 강렬한 띠지 문구를 뽑아야 하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기는 한데, 또 대다수 출판사에서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왜 띠지를 만드는 것일까요.

이런 물음에 이보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고백은 없을 것이기에, 북스피어라는 출판사의 블로그의 글을 인용해 봅니다. 

** 주의: 다음 공감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의 개인적인 것임을 밝혀 둡니다.

실은 연말 즈음에 결산을 하며 나름대로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 대관절 너는 왜 띠지를 하려고 하는가.

갖가지 답변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차마 여기 쓰기도 민망하다. 그 가운데 가장 압권은.

― 그거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였다. 역시, 한심해.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얼마든지 혀를 끌끌 차셔도 무방하다. 나는 솔직히 띠지가 얼마나 독자들의 ‘니이~~~~~~즈(needs)’를 자극하는지 잘 모른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이대는 사람으로부터 설명도 들었지만, 어쩐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뭐 개인적으로 띠지가 있는 책을 보면 ‘음, 띠지까지 둘렀으니 뭔가 있어 보이는군’ 하는 감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요새 띠지 안 하는 책이 어딨나. 그런 식으로, 플러서 마이너스를 계산해 총합적으로 따져보면…

― 역시 안 하는 게 남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이다. 헌데 막상 책을 낼 때만 되면, 띠지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채 띠지를 해야 할 이유를 사무실 책상 한가득 늘어뜨려 놓고 있는 거다. 왜냐.

― 그거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띠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으로는, 그 어떤 광고도(예컨대 대형 서점의 매대 행사도, 온라인 서점의 배너도, 불특정 독자에게 보내는 대량 메일) 불가능하다. 띠지를 만들 수 있는 제작비 정도로 할 수 있는 ‘책 선전’은, 없다.

신문과 라디오 곳곳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굵직한 출판사들이 아닌 바에야 홍보하는 데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용에는 한계가 있고, 이런 비용을 활용하여 홍보할 만한 수단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결국 띠지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맥락에서 약간 벗어나는 얘기이지만… 얼마 전에 책을 사며 경험한 일을 떠올려 봅니다.

종로 반디앤루니스에 방문했을 때인데, 시간이 남아 각 분야 코너를 돌며 책을 구경하고 있었죠. 소설 코너에 가니 역시나, 여전히 일본 소설이 많더군요.

장르문학 쪽을 기웃거리다 보니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라는 소설이 보입니다. 여기에도 띠지가 있더군요. 그런데 띠지 문구가 심상치 않습니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이 강렬한 문구에 저도 모르게 책을 집어 들고 서너 쪽을 읽어보았으며, 덥썩 책을 구입했습니다.

띠지라면 이 정도의 강렬함은 담아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띠지, 꼭 해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여러 글도 읽으면서 고민했지만 결국 이렇다 할 확신을 세우지도 못하고, 마땅한 대안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만 새삼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띠지를 할 양이면 종이 아깝지 않게, 독자의 불편함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면, 진정 눈과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좋은 띠지 문구를 고안하는 것이 바로 편집자의 최선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0년도 벌써 2월의 중순입니다.

1월의 계획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하시는 분들은 구정을 새해로 여기시고 심신을 가다듬어 새롭게 하려던 바를 이어나가시기 바랍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