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Working Software)’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이해관계자와 협의하며 섬세하게 코드를 다듬듯, 편집자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책이 어떻게 전달될까를 고민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정성을 다합니다.

그 각 단계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개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표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독자가 책을 볼 때의 첫 느낌을 좌우하니까요.

어느 날 불쑥 디자이너에게 제목만 얘기해 주면 표지가 ‘생산’되어 나오는 게 아닐 테니, 편집자는 원고를 받아드는 순간부터 표지를 어떻게 할까 머리를 싸매게 됩니다.

예컨대 『프로토타입과 스크립타큘러스(Protptype and script.aculo.us)』라는 책을 발간키로 했는데 이걸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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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웹 개발에 쓰이는 동적 언어로 최근 리치 클라이언트 환경이 점점 중요하게 되면서 새로이 조명 받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Prototype)이나 스크립타큘러스(script.aculo.us)는 이 자바스크립트 프레임워크인데. 자바스크립트 개발을 편리하게 해주고, 특히 스크립타큘러스는 비주얼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탁월…… 어쩌구 저쩌구 ……..

아마 이렇게 설명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책)디자이너가 거의 없을 겁니다.

물론 이렇게 설명하진 않고

자바스크립트란 건 말이죠. 예전에 카페 게시판 같은 데 보면 글씨가 동동 떠다니며 움직이는 게 있잖아요. 그런 걸 만들었거든요. 근데 최근에 서점 같은 데 들어가면 책 이름의 첫 글자를 치면 그 첫 글자로 시작하는 책들이 스르릉~ 하고 열리잖아요. 그런 걸 만들어요. 예전에 비해 화면이 훨씬 멋있어 보이잖아요. 요즘엔 그런 걸 자바스크립트로 만들어요. 웹을 풍성하게 보이게 해주죠. 에이젝스(Ajax) 같은 게…. 뭐 몰라도 괜찮아요. 하여간 그런 게 있다구요.

프로토타입이나 스크립타큘러스는 그 자바스크립트로 프로그램을 만들 때 편리하게 해주는 거예요. 프레임워크라고 하죠. 거… 있잖아요. 자동차 차체(framework). 같은 프레임워크에서 소나타도 나오고 산타페도 나오고 하잖아요. 같은 프레임을 쓰니 비용도 절약되고……

이렇게 마구마구 풀어서 쉽게 얘기하면 대략 설명하고자 하는 게 뭐다 하는 정도를 알아듣게 되죠.

그 정도면 디자이너가 알아서 할까요? 당연히 그 설명을 들은 디자이너는 자기가 이해한 걸 갖고 어떻게 구현할까 머리를 짜죠. 그래도 책이 어떤 내용을 담는지 이해(?)했다는 것과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표지에 자동완성 기능을 보여주는 화면을 덩그마니 올릴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해야 더 잘 설명할까 고심하다, 이 책을 옮기신 박영록 님께 프로토타입이나 스크립타큘러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요청했습니다.

박영록 님은

프로토타입(Prototype)은 원형이 되서 공장에서 차체를 빨리빨리 찍어내는 역할을 하고 스크립타큘러스(script.aculo.us)는 찍어낸 차체를 가지고 차를 데코레이션하고 완성하는 역할을 하는 그런 느낌이죠. 이런 느낌을 살릴 수 있으면 꽤 괜찮을 듯.

라는 설명과 함께 아예 이미지를 직접 그려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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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희가 만들려는 책의 내용이 뭔지 ‘그림’으로 그려지나요?  그림까진 그려지지 않더라도 뭘 설명하려는지는 한층 명쾌해졌죠?

편집자로선 책을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제 이걸 구현하는 건 온전히 디자이너의 몫인 겁니다. 같은 설명을 했더라도 어떻게 구현되어 나오는지는 디자이너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겁니다.

아래는 완성된 시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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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글을 따라 오시면서 책 표지가 어떻게 나올지 조금씩 예상하셨을 텐데, 생각하시던 표지와 완성 시안이 비슷한가요? 완성 시안은 책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나요?

ps. 듀트 님께서 얼마 전 발간된 『자바스크립트 완벽 가이드』의 표지가 꽤나 어색하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댓글로 설명 드렸듯이 ‘오라일리(O’Reilly)’의 동물 시리즈는 디자인 제약이 있어, 코뿔소를 그대로 갖다 쓸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무래도 디자인이 섞이게 되니 뭔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도 저희가 발간하는 자바스크립트 책들은 통일된 느낌을 갖고 싶어, 그렇게 디자인을 요청했답니다.

동적(dynamic)인 언어인 자바스크립트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표지 하단의 동글동글한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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