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의 파릇파릇한 새싹, 너굴;입니다.

최근 조사대로 서른 개 직군 중 연봉이 최하위라는 그 인기가 날로 높아만 간다는 편집자가 되어 출판편집의 길에 들어선 것이 마냥 배고프던 기쁘던 어느날, 드디어 신입 편집자에게 먹이가 원고가 주어졌습니다. 표지에는 고리타분하게도 착한 천사와 나쁜 악마가 개발자를 꼬드기는 그림이 그려져 있더군요. 제목을 읽어보려 했으나 영어 난독증이 있어서 가볍게 pass…

너굴;도 한때 개발자에 몸담을 뻔했기 때문에, 한글로 번역된 원고를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얇은 재미있는 책을 지은이가 도대체 누굴까?

한 번쯤 원고를 읽었을 무렵 제목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하니 님의 블로그에서 공모한 제목들을 죽 늘어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편집자들이 상상되시나요? 단어 바꾸기 놀이를 하며 한참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눈 빠지게 기다리던 퇴근시각이 되었더군요. 하지만 회의가 끝나지는 않았죠. 모두가 결론 없이 길게 이어지는 회의에 지쳐가던 좋은 제목에 목말라 하며 고심하던 그때, 두루 님께서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

“맥주나 한 잔 하면서 (회의) 하면 어떨까요?”

한여름을 향해 달리던 태양이 잠시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다들 그게 무슨 행복한 황당한 소리냐고 했지만, 일단 나온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의견에 따랐습니다. 이 날 술판에서 제목 회의에서 정해진 것이 바로 애자일 프랙티스랍니다. 모든 사람이 안주와 술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루 님만은 (상당한 책임을 느끼며) 제목에 몰두해 독자 분들이 제시해 주신 여러 제목 시안들에서 엑기스만 뽑아주셨지요. 책 제목이 상당히 깔끔하죠? 아마 비싼 안주를 먹은 것이 좋은 회의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리뷰어들께서 보내주신 리뷰 원고와 신승환, 정태중 님의 재교정 등을 거쳐 엊그제 필름이 나왔습니다. 카메라 필름이 아닌 인쇄용 필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첫 경험이었습니다. 필름 검판도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더라고요. 책 한 권 내기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닙니다.

이제 인쇄와 제본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예쁜 표지가 본문을 꼬옥 끌어안고 (상상하지 마세요!) 제 손에 들어올 날이 기다려집니다.